작성일 : 13-10-2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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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남지우 (112.♡.223.208)
 조회 : 2,244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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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생성론자들은 주로 지구의 기원에 대해서 연구를 하였다. 비록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와 같은 일부 고대의 철학자들이 지구가 영구히 존재해왔다고 보았지만, 중세 때부터 전개된 서구과학의 전통은 신이 지구를 무(無, nothing, ex nihilo)로부터 창조했다고 주장하였다. 16세기 말경까지 만해도 통상적으로 우주와 그 밖에 것들과 동시에 창조된 것으로 여겼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의 6일간이 그것이다.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 버르네트(Burnet, 1635-1715) 그리고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등은 지구의 기원이 우주의 다른 것들과는 아주 다르며, 훨씬 뒤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17세기에는 지구기원론에 대한 3가지 주요 유형이 있었다: (a) 지구는 점진적이고 자연적으로 일종의 원초적인 카오스 상태로부터 변화를 거쳐 살 수 있는 조건에 이르렀다는 설.
(b) 지구는 원시적으로 일종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는데, 즉, 비옥하고, 평평하고, 질병과 죽음이 없고 온화한 기후 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로 퇴화[삭박]가 되었고, 구대(舊代, old-age)를 거쳐서 신의 벌로 노아의 홍수를 거쳤다는 것. 이 견해는 버르네트등이 지지한 견해로 인기가 있었다. (c) 지구는 현재의 조건과 근접한 상태에서 창조되었고, 암석은 쪼개져 지층들(地層, strata)로 되었고, 지형은 산과 계곡, 육지와 바다, 그리고 동식물의 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드워드(John Woodward, 1665-1728)와 같은 자연주의자들의 견해이고 역시 인기가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견해는 일반적으로 지구의 나이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견해이다[시간].
진정한 의미에서 이들 이론의 어느 것도 완전한 것이 아니다. 우주생성론이란 충분한 변수를 고려해서 엮어야 하는 것이고, 예를 들면 화석(化石, fossil), 지형, 생명의 역사, 지층의 성질들을 고려 했어야만했다. 다른 한편으로 지구의 유년기의 직접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얻어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우주생성론을 지구의 창조론에 짜서 맞춘다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한 일이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우주생성론에서 세 가지의 주요발전이 있었다.
첫째는 지구의 기원을 설명하기위해서 지구물리학 혹은 태양물리학이 생겨났고, 일반물리학적인 원리에 입각한 초기의 연구가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라이프니츠나 뷔퐁(Buffon, 1707-1788)과 같은 사람은 원시적인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용융상태의 공 형태로 튕겨 나왔다고 생각하였다. 극도의 고온에서 점차 적당한 온도로 내려갔다고 설명한다. 지구가 고온이었을 때 격한 변동과 분화(噴火, eruption)가 발생했고; 그리고 높은 산들이 형성이 되고, 유리암과 결정암들이 마그마가 식어서 생성 되었다. 지구가 더 식어감에 따라서 퇴적암이 만 들어 질 수 있었고 응축된 물이 바다로 되었다. 결국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있을 정도로 식었고, 저절로 온화하고 비옥한 환경이 만들어 졌다. 지구가 더 식게 되자 효용성은 감소되었다. 종의 자연적인 발생은 정지 되었고; 거대한 종(種, species)이 작은 종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19세기엔 폭넓은 지구물리를 통해서 지구를 이해하려는 비슷한 시도 들이 흔한 현상이었다. 특히 켈빈경(Lord Kelvin, 1824-1907)은 열역학 법칙을 써서 지구의 성격, 나이와 미래의 열사(heat-death)라는 관점에서 판단하려고 하였다[열과 열역학].
둘째는 지구의 초기역사를 지구의 생성물들을 면밀히 연구함으로서 밝히려 하였다. 층서학(層序學, stratigraphy)의 부상은 지층들의 상대적인 나이를 비교하고, 제일 먼저 형성된 지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하였다. 베르너와 같은 지질학자는 산의 핵(核, core)을 이루는 특징으로서 결정질암, 괴상암, 경암(硬岩, hard rock)이 퇴적암 이전에 선행되고 원시적인 것들이라고 보았다. 대다수는 화강암(花崗巖, granite)이 가장먼저 형성된 암석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비슷하게 고생물학자들은 층서단면(層序斷面, stratigraphical column)에서 발견되는 화석에서 일정한 순서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것으로부터 세지윅(Adam Sedgwick, 1785-1871)이나 멀치슨(Roderick Murchison, 1792-1871)과 같은 자연주의자 들은 화석조건을 연구하여 가장초기의 원시적인 생명체가 실루리아기나 캄브리아기에 형성 되었고, 최초로 생명이 탄생한 시점으로 잡고 있다.
셋째는 일부의 지질학자들, 특히 허튼(James Hutton, 1726-1797)과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과 같은 과학자들은 과학을 바탕으로 해서 우주생성론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들은 과학이란 지구나 생명체의 탄생과정에서 탄생과정에 대한 유비(類比, analogy)[모델]를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지구의 창조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남아 있지 않고, 지형, 암석, 광물들은 연속해서 생기고 없어진 대륙의 후속유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층의 순서는 절대적 시간 순서를 밝히질 못한다. 고생물학적인 기록에서 생명체의 역사는 남아 있질 않다. 허튼의 기념비적인 말이 남이 있는데 “시작의 흔적은 없고(no vestige of a beginning)” 그리고 “종말의 전망도 보이질 않는다(no prospect of an end)”. 그러나 허튼과 라이엘 및 그의 후계자 들은 지구가 영원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구는 무한할 정도로 오래되었고, 인간은 그 시초의 역사에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툴민(George Hoggart Toulmin, 1754-1817)은 지구가 영원하다고 확언 하였다.
허튼과 라이엘 같은 후자형의 과학자들은 동일과정설(同一過程說=齊一說, uniformitarianism)을 바탕으로 하는 지질학으로의 전환이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지구가 대단히 오래되었다는 것과 진짜로 최초의 암석이나 화석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오류의 위험성을 설득하였다. 참고로 오늘날 선캄브라누대(先캄브라아 累代, Precambrian)의 암석은 6억년이상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세기의 우주(지구)생성론에 대하여 가장 심오한 공헌이 두 분야에서 나왔다: (a) 방사능의 발견. (b) 대륙이동설(continental drift)과 판구조론(plate tectonics). 빅토리아시대(19세기)의 물리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지구는 보다 천천히 식은 것으로 판명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지구내부에서 나오는 방사능이 태양열과 무관함이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2차 대전후 대륙이동설과 판구조론은 매우 인기가 있었다. 현재의 대륙들은 거대한 남부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지구주위를 수평이동하고 있으며, 초기에는 지각(crust)밑에 존재하는 용융층의 활동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주생성론 [cosmogony, 宇宙生成論] (과학사사전, 2011.2.1, 이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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