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21 23:51
|
글쓴이 :
장영은 (183.♡.142.121)
 조회 : 2,194  추천 : 0
|
|
|
1929년 10월, 주식 시세는 폭락했으며, 보통주의 액면 가격의 40퍼센트가 날아가면서 미국의 주식 시장이 붕괴했다. 그런데도 정치가와 산업계를 이끄는 인사들은 국가 경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 낙관했다. 하지만 불황은 깊어갔고 자신감은 사라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근거지를 잃었다. 1933년 뉴욕 증권거래소의 주식 가치는 최고조에 달했던 1929년에 비해 5분의 1로 감소했다. 가게와 공장은 문을 닫았고 은행은 파산했다. 농가 수입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1932년엔 미국인 평균 4명 가운데 1명이 실직자였다.
문제의 핵심은 국가의 총생산 능력과 소비 능력 사이에 발생한 거대한 간극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 그리고 전쟁 이후에 높아진 생산력은 미국의 농민과 임금노동자가 구매할 수 있는 한도보다 훨씬 많은 상품을 쏟아냈다.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계층이 모은 저축액은, 투자 부문이 흡수할 수 있는 규모를 훨씬 상회했다. 그러자 이 자금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미친 듯이 몰렸다. 주식 시장 붕괴는 빈약한 투기 구조로 인해 연속적으로 발생한 폭발의 첫 번째 신호탄에 불과했다.
1932년 대통령 선거의 주된 쟁점은 대공황의 발생 원인과 치유책이었다. 불행하게도 주식 시장이 붕괴하기 불과 8개월 전에 백악관에 들어갔던 불행한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산업의 수레바퀴를 다시 돌리려고 갖은 애를 써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대공황의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뉴욕의 인기 높은 주지사이자 민주당 후보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상대해야 했다.
루스벨트는 대공황이 미국 경제의 구조적인 취약함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취약함은 1920년대 공화당이 추진해온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후버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건전하지만 1차대전으로까지 원인을 추적할 수 있는 세계적인 불황 때문에 미국 경제가 덩달아 약해졌다고 맞받았다. 이런 논쟁 뒤에는 다음과 같은 암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즉, 후버는 주로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 공황을 극복하려고 했던 반면에, 루스벨트는 연방정부의 개입으로 과감한 개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선거는 루스벨트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후버는 1,570만 표를 얻는 데 그쳤지만 루스벨트는 2,280만 표를 얻었다. 미국이 바야흐로 정치적·경제적으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
|
Total 1,375
|
select * from g4_write_BD_toefl where wr_is_comment = 0 order by wr_num, wr_reply limit 90, 15